24일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와 함께하는 미사’가 서울 퇴계로 세종호텔 앞에서 봉헌됐다.
이날 미사는 서울대교구, 인천교구,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노동사목위원회, 남녀 수도회가 호텔 앞에서 고공 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 고진수 씨를 비롯해, 해고된 뒤 남아 싸우고 있는 6명 조합원의 복직을 위해 마련했다.
미사 참여한 사제, 수도자, 신자 70여 명은 세종호텔 해고자들뿐 아니라 현재 곳곳에서 임금 차별 철폐와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고공 농성 중인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 구미 한국옵티컬 박정혜, 소현숙 노동자들도 함께 기억했다.
“갖가지 비탄이 끊이질 않습니다. 우리 일상에 지극히 평범해 왔던 것들, 단출하지만 든든한 한 끼 식사가, 수수하지만 따스한 우리 집 이불 속이, 또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여는 깊은 밤 단잠이 줄곧 우리의 귀에 대고 다음과 같이 외치게 되었습니다. 저기 천막 아래 단식으로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 저기 거리의 아스팔트에 밤새 추위에 떠는 사람들이 있다. 저기 지하차도 진입 차단 시설 위에, 저기 불탄 공장 위에, 저기 CCTV 철탑 위에, 저 높은 곳, 위험천만한 하늘 감옥 위에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입니다.”
김비오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는 강론에서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환영 받지 못한다는 복음 말씀을 들며, “복음에서뿐 아니라 마땅히 옳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박해 받는 일은 애석하게도 낯설지가 않다. 의로운 자들이 겪게 되는 어떤 숙명과도 같은 것. 예언자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저 이방인을 혐오하고 선택된 민족이므로 무조건 구원받는다는 이들에게 하는 복음의 경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행태 가운데 하나가 ‘세습’이라며 세종호텔의 경영 세습을 꼬집었다. “내 딸, 내 아들이니까 회사의 경영자로 정해지고, 얼마 안 가 회사가 이상해지는 것은 경영자의 무능과 윤리적 도덕성이 문제인데, 힘들어도 기쁘게 일해 온 노동자들이 해고된다.”
이어 “하느님나라를 이루는 것 역시 내가 성당을 열심히 다녀서, 대대로 구교 집안이라서, 성지를 방문하고, 귀하고 예쁜 것을 둘러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같은 사랑을 실천하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며, “구원의 은총은 막연한 선민 의식과 특권 의식, 엘리트 의식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 그들이 천대하고 혐오한 이들에게 베풀어졌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이는 엘리트 의식과 혐오에 빠진 이들에게 엄중한 경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예수님의 기도는 고상하고, 아름답고 화사한 것이 아니라 “거친 땅에 엎드려진 채 몸과 마음이 점유되며, 피땀이 떨어지는 고통이었다. 그렇게 예수의 기도는 우리의 인생에 허무가 아닌 이웃을 향한 사랑을 담으라고 몸짓하고 있다”면서, “진한 인생이 담긴 그런 기도, 거짓을 거부하며 발가벗겨진 실상을 재료로 삼는 기도로 고된 투쟁 속 자신의 삶에 진항 사랑을 담아내는 노동자들을 기억한다. 노동자들을 일자리에서 내쫓는 이들이 자신의 무거운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청할 수 있기를, 일하는 모든 이가 존중과 품위 있게 삶을 꾸리며, 노동의 존엄과 휴가의 아름다움을 마땅히 누리도록 기도하기"를 청원했다.
한편 지난 2월 13일, 일식 조리사로 세종호텔에서 20여 년 일한 고진수 지부장이 부당 해고에 항의하고,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면서 호텔 앞 10미터 높이 구조물에 올랐다. 그는 2017년에도 정리해고법 폐지,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광화문 사거리 광고탑에서 고공 단식 농성을 한 바 있다.
세종호텔은 2021년 12월, 민주노총 조합원 12명을 정리해고 했다. 2000억 자산과 자회사 배당이 있었지만 노조는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고용유지 지원금의 사측 부담금을 책임지겠다는 제안도 했다. 그러나 사측의 목적은 자금이 아닌 정리해고였다.
세종호텔은 세종대학교 재단 대양학원이 100퍼센트 지분을 갖고 있는 수익 사업체다. 대양학원 설립자의 아들인 주명건 씨는 감사를 통해 재단이사장에서 해임되고, 세종호텔에 복귀하면서 부당해고 문제가 시작됐다. 정규직 280명이 일하던 호텔에는 현재 정규직 22명, 비정규직 40여 명만이 남아 있다.
고진수 지부장은 새벽 5시 고공 농성에 들어가며, “신발 속 거슬리는 모래알을 넘어 나와 일터를 지키는 위협적인 송곳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면서 대법원 판결까지 패소했지만, 싸움을 결의한 조합원 6명에게 남은 선택지는 노동조합답게 승리하는 방법뿐이라며 고공 농성을 시작하는 뜻을 밝혔다.
고 지부장은 정리해고 투쟁은 3년을 넘었지만, 노조 탄압에 맞선 싸움은 15년간 이어 왔다면서, “회사는 복수노조법을 활용해 교섭권을 앗아가고 부당 전보와 각종 괴롭힘으로 노조의 힘을 약화시켰다. 그렇게 임금은 개악되고 정규직은 점점 줄어들었으며, 2021년 12월 10일 민주노조 조합원 12명을 표적 정리해고하며 노조 파괴에 종지부를 찍으려 했다”고 밝혔다.
그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이 유리한 판결은 10년 가까이 시간을 끌지만 우리처럼 노동자에게 불리한 판결은 속전속결로 처리된다.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증명하려면 고공 농성이라는 극한 투쟁으로 저 스스로를 몰아넣어야 한다”면서, “저를 비롯해 허지희, 김란희, 민병준, 이주형, 이치호 6명 노동자는 대법원을 넘어 노동조합다운 투쟁을 결의했다. 세종노조 15년의 역사를 정리해고로 마무리하려는 주명건의 계획은 실패할 것이며, 우리의 승리로 투쟁의 역사를 이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대를 통해 이겼던 경험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믿는다. 2012년 파업 투쟁에서 승리했다. 소수 노조였지만 동지들의 연대로 승리할 수 있었고, 연대로 동지들께 보답할 수 있었다”며,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지는 한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우리의 투쟁을 복직으로 귀결시키고 싶다. 자본가들이 정리해고를 쉽게 하지 못하도록, 세종호텔 정리해고가 철회되고 남은 조합원들이 복직할 수 있게 한 번만 더 연대와 희망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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