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기사모음

[노동.이주] 특별기고: 노동사목의 발자취와 도요안 신부 (가톨릭신문)
  • 작성자
  • 사회사목국
  • 작성일
  • 2020-11-16



 

2009년 도요안 신부 모습. 이듬해 선종해 올해 선종 10주기를 맞는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제공

 

가톨릭신문   발행일2020-11-15 [제3219호, 11면]

[특별기고] 노동사목의 발자취와 도요안 신부

산업화 그늘에서 고통받던 노동자들의 피난처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무너진 기본권 교회가 노동문제에 목소리 내기 시작
이주민 자립 위한 물질·정신적 지원과 이주노동자 보호법 제·개정 위한 활동
한국 노동사목의 선구자 도요안 신부 인권과 노동 존엄성 다루는 일에 헌신
노동자과 이주민 권리 수호 위해 힘써

 

“도요안(John. F. Trisolini) 신부님을 알고 계시나요?” 1968년부터 한국에서 살며 2010년 11월 22일 선종하기까지, 노동자와 이주민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살레시오수도회 소속 미국인 사제다. 1971년 김수환 추기경께서 열악한 노동자 현실을 걱정하며 도시산업사목연구회(노동사목위원회 전신)를 설립하고 교회가 본격적으로 노동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도요안 신부는 그 중심에서 약자들의 권리가 지켜지고 복음이 실현되는 세상을 위해 애썼다. 노동자와 이주민의 인간 존엄 문제와 과감히 맞섰던 사제 도요안의 선종 10주기를 앞두고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와 이주사목위원회는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현재 우리 교회의 시대적 소명을 발견하고자 가톨릭신문에 특별기고를 싣는다.

 

■ 노동 현실과 노동사목의 출범

한국의 경제발전은 이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땀과 눈물의 산물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기본권과 노동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 현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그리고 교회 등에서 많은 사람의 헌신이 있었다. ‘도시산업사목연구회’에서 출발한 ‘노동사목위원회’도 그중 하나다. 위원회는 성 바오로 6세 교황 회칙 「민족들의 발전」이라는 보편교회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태동해 일하는 사람들과 60여 년을 함께해 오고 있다.

1970년대는 국민의 기본권이 철저하게 유보됐던 시기로 노동자들에게 장시간·저임금의 열악한 작업조건을 강요했다. 이에 교회는 가톨릭노동청년회, 가톨릭노동장년회, 도시산업사목위원회 등을 통해 노동 현실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1980년에 들어서면서 노동 현실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노동삼권이 제약된 데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조처로 노동자의 활동 또한 위축됐다. 교회는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도록 돕는 한편, 노동사목을 강화하기 위해 도시산업사목위원회를 ‘노동사목위원회’로 개편했다. 1987년부터 10년간은 노동사목위원회의 성숙기로, 격동하는 시대 상황에서도 가톨릭교회는 양적·질적으로 성장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노동 쟁점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갖추기 위해 지속해서 학습과 연구모임을 개최했고, 보편교회 가르침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변화된 상황의 인식과 적응, 조직 확장, 국제교류 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 이주사목 활동 전개

급속한 경제발전, 88올림픽 이후 높아진 국제적 위상, 노동자들의 3D업종 기피 현상 등은 1990년대에 이주노동자의 급격한 유입을 초래했다. 노동사목위원회도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여성 문제에 대해 전문성과 다양성을 갖춘 문화적 접근을 시도했다. 서울대교구는 종전의 산발적 지원활동을 정비해 1992년 이주노동자 상담실을 개설하고 이주민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체계적·전문적인 상담 활동을 전개했다.

이주노동자를 보호하는 법 제·개정을 포함한 각종 의견서를 제시하는 활동 등과 더불어 각종 문화사업과 행사를 통해 이주민들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고 그들과의 관계 개선에 노력했다.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탈바꿈한 한국교회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으로 고통받는 결혼이민여성과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물질적·정신적 지원을 기울여 건강한 사회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 시기에 노동사목의 새로운 영역들이 발굴·확장됐다.

2000년대 들어와 노동사목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금융위기로 초래된 비상 상황에서 정부나 사회가 현상 문제에 매달려 있을 때 교회는 급식소 등 긴급구호 차원만이 아니라, 취업 정보와 기술습득훈련 등 근본 대책을 마련하는 데 앞장섰다. 노동사목위원회는 2000년을 ‘노동자의 대희년’으로 선포하고 노동의 참된 가치, 사회교리, 노동자 존엄성 등 가톨릭교회 가르침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이웃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민족복음화 사명을 수행했다. 한편, 2014년에 노동사목위원회 내 이주사목분과를 이주사목위원회로 공식 승격시켜 두 위원회가 분리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0년 4월 노동자의 날 심포지엄에서 발언하고 있는 도요안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제공

 

2004년 3월 서울 보문동 노동사목회관에서 열린 베트남 공동체 미사.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2006년 11월 이주노동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도요안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제공

 

■ 우리들의 스승, 도요안 신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톨릭교회는 한국의 노동 현실을 직시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함께 노력해 왔다. 노동사목 활동에 많은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도요안 신부는 이 모든 활동에 중심적 역할을 한 분이다. 도 신부는 2010년 11월 22일 선종할 때까지 이 땅의 노동자들, 이주민들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앞장서서 이들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애썼다.

노동사목위원회 전신인 도시산업사목연구회 초대 위원장을 맡았으며, 1983년에 노동사목위원회 3대 위원장직을 맡아 수행했다. 이주사목위원회 활동의 모태가 된 외국인노동자상담소가 1992년 개소할 때 담당신부를 맡아 이주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이들이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노력했다.

도요안 신부는 1937년 3월 2일 미국 뉴저지주에서 태어나, 뉴저지주 돈보스코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1959년 한국에 입국해 3년 동안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에서 영어와 라틴어 교사로 재직했다. 그 뒤 이탈리아와 프랑스 신학대학에서 공부했고, 1967년 프랑스 리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1968년 서울 도림동성당에서 보좌신부로 사목을 시작한 이래 한국이 고향이 됐고 이후 가난한 사람,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이어왔다. 서울대교구 가톨릭노동장년회 지도신부(1972∼1979), 가톨릭노동청년회 전국지도신부(1983∼1985),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1982∼1999), 노동사목회관 관장(1999∼2002), 서울대교구 이주사목 담당신부(2002∼2010) 등 일생 대부분을 인간 권리와 노동 존엄성을 다루는 일에 헌신했고, 노동자들의 피난처와 방패 역할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도 신부는 자애로웠고, 유머가 넘쳤으며 말년의 모습에는 이웃집 할아버지와 같은 포근함이 있었다. 와인과 요리에 대해서도 해박했고 전문가적 식견을 보여 줬다. 그러나 생활은 엄격했고 방은 정갈했으며 저술 활동을 위한 자료와 신문 스크랩북이 항상 책상에 놓여 있었다. 도 신부의 글은 논리적이고 각주와 참고문헌은 그분의 독서량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풍부했다. 늘 사회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보여 줬지만, 글과 말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으며 합리적이고 실천적이었다. 거듭되는 암수술과 신장 투석을 힘겨워 하면서도 한국의 노동 현실, 이주노동 문제, 다문화가정 문제에 대해 지속해서 의견을 개진하는 등 좀 더 나은 세상을 이뤄 나가는 데 당신의 역할을 끝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 노동의 현실은 도전의 연속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 규모는 세계 10위권 안팎이고 전반적인 삶은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심화, 소득 불평등, 장시간 노동, 청년실업, 플랫폼 노동자들이 처한 근로환경,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선진국에 진입해 있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들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은 이러한 현실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부조리와 불평등을 해소하고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명이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와 이주사목위원회는 시대적 소명에 부응해 앞으로도 실천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이주사목위원회 



  • 트위터
  • 페이스북
  • 트위터
  • 페이스북
  • 첨부파일
  • S.jpg (348Kb)